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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이야기.

gamro 2009. 2. 14. 06:32

 

    <사진>55여년 전 나의 모습. 

 

잠에서 깨어나

<천수경>을 듣다가 문득 옛 생각이 난다.(09,02/14)

 

주마등처럼 스쳐간 지난세월들이 새삼 희미하게 떠오르니

잊기 전에 옛 기억이나 펼쳐볼까?

 

긴 시간을 두고

조금씩 빈 공간을 채워보려 장을 만든다.

 

아마

글을 섰다가 지우고 수정을 하고 보충을 하는 경우가 수없이 많을 것 같다.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몰래 쓸까도 생각했는데 거짓없이 터놔야

행여 아이들에게도 떳떳하지 않을까 하고..

 

*

1979년 말

유리창도 여기저기 깨져 서글픈 90평의 허름한 빈 공장

침침한 한쪽 구석에서 몇 대의 조그만 기계를 설치하느라 분주하였다.

 

지금이라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노라면 서글프기 짝이 없지만

그래도 그때는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설치던 젊은 시절이라

비록 월세의 허름한 공장이었지만 감지덕지 하늘이 내린 복으로 생각하였다.

 

월세공장을 마련해 겨우 전선을 깔아 전등불설치를 하던 시초에

어릴 적부터 내 삶을 죽 지켜보았던 가까운 친척분이 찾아와서 하시던 말씀이

“또 엄청스런 고생을 싸서 시작하는 구나 겁도 없이”

 

맞아요!

지금이라면 절대로 할 수 없었던 일을

나이 겨우 30 이라 겁도 없이 온몸을 바칠 각오로

앞일을 생각지 않고 오늘 하루하루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답니다.

 

나 보다 더 늙고

나 보다 더 못 배우고 힘없는 사람들도 하는 일을

젊고 싱싱한 내가 뭣이 모자라 그들에게 지겠느냐!

정말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무모하게 덤벼든 시절이었으나

천방지축에도 큰 행운에 하늘이 돌보고, 조상님이 돌봐 주시고

마음으로나마 의지하고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시던 아버지의 덕에

자그마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

대학시절

공부에는 크게 취미가 없어도 활동하는 일에는 참 재미가 있었다.

특히나 전공필수 특정과목을 원어로 바꿔하는 통에 듣기가 싫어

교수님께 수업참석을 못하겠으니 리포트로 대신해달라 하였을 정도였으니.

 

검정색 염색물들인 군복 상의에 백고무신을 신고

곱상한 얼굴에 제법 단정한 모습으로 교정을 오가면서

풋내기의 멋을 한껏 부리던 옛 시절을 생각하면 좀 부끄럽다.

괜히 오가는 여학생들을 찝쩍거리면서...

 

2학년 때부터 벌써

시간이 나면 학교근처 큰 시장에 구경 다니는 것이 취미였다.

 

서울에서 어린이학습지를 받아 팔아보겠다고 책가방에 잔뜩 넣어

수업이 없는 시간에 온 동네를 헤매며 한건도 못하는 헛짓도 하고

특허 상품을 받아 대리점을 하겠다며 서울에 편지를 보내

견본용 상품을 잔뜩 받아 진저리나도록 혼자 쓰던 때도 옛 이야기.

 

장날

칠곡 장터에 친구와 둘이서 한보따리 아동복을 펼쳐놓고

온종일 점심값도 못 버는 장사도 해봤으며

겨울에 석유장사를 하자며 궁리하던 때를 생각하면 한심이 줄~줄~

 

방학이 되면

할인권(기차,버스)을 한 묶음 구한다.

물론 학생처에 가서 별의별 거짓말을 다하여 1인 2장만 주는 할인권을

혼자서 수 십장 한 묶음씩이나..

 

큰 배낭에

쌀과 군용 텐트, 뽁은 고추장등 밑반찬 몇 가지를 넣고

부모님께 단돈 5천원을 얻어 친구와 둘이서 전국 무전여행을 떠난다.

 

‘키 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라는 곡이 한창 유행 할 즈음

영주에서 강릉행 새벽 특급열차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서울서 영주를 거쳐 설악산으로 향하는 관광열차에는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젊은 귀족의 피서객들로 가득하였다.

그들 틈새 끼어 마른 건빵에 맹물로 배를 채우며...

 

돈 들여 고생을 싸서하는 별난 짓을 대학시절에 엄청 많이 하였다.

그 뿐 아니라 가내공업을 하는 집안일을 그때부터 많이 도우기도 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