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세상

화진포의 이승만대통령기념관(별장)

gamro 2020. 12. 30. 15:04

 

또 왔다.

충절의 선조를 모신 사당을 찾듯

이 지역에 여행만 오면 꼭 들러 그의 큰 업적을 되새겨본다.

화진포는 산천경개 좋은 명승 관광지이지만

쉬고 즐기려 긴 시간 머물지는 않는다.

 

 

대한민국의 건국 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관.

기념관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은 중년에게 참 고역이다.

그 흔한 에스컬레이터나 아니면 엘리베이터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꼬!

하기사 초대대통령기념관 바깥전시관의 초라함을 보노라면 더 기가 막힌다.

 

 

1875(고종12) 황해도 평산에서 출생하여

1965년 타국에서 향년 91세로 사망한 이승만.

바깥의 전시관에서 보노라면 그 옛날 1904년에 미국유학을 하며

1905년에 벌써 루즈벨트 대통령과 면담을 하였으니

그의 일대기를 보노라면 대범한 인품의 그가 대한민국 국민으로 탄생하였다는 게

그 당시의 백성, 그리고 지금의 우리 국민들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기념관 외벽에 건물의 유래가 적혀있다.

노 머시기의 생가에는 아직껏 안 가봤지만

목포의 선상님 기념관에는 진도 여행 중에 가봤다.

보고 온 소감은 함구불언(緘口不言)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문장은 외벽뿐 아니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고맙게도 글 옆에 한글로 번역 풀이까지 해놓았다.

언교화여월(焉敎花與月) 무회우무추(無晦又無秋)

화월장춘국(花月長春國) 인무백발수(人無白髮愁)...

풀이는 생략..^^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우남(雩南) 이승만(李承晩) 박사의 흉상이다.

그는 일찍부터 많이 공부하여 유능한 국제적 인물이 되었었지만

잘 생긴 외모에서도 느껴지듯 그의 머릿속엔 위국헌신(爲國獻身)의 정신뿐이었다.

국록을 받는 모든 이들은 자기의 정신과 똑 같으리라 너무 믿었던 탓인가?

많은 업적을 남기면서도 젊은 청년들의 원에 따라 순순히 하야를 하고

조국에서 멀리 쫓겨나 쓸쓸하게 일생을 마치는 비운을 맞았다.

 

 

요즘의 찌질한 위정자들을 보노라면

잊고 있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의 높은 안목과 인품에 무한한 존경심이 생긴다.

하와이로 추방된 후 일생을 마치기 전의 <마지막 기도문>을 옮긴다.

-이제 저의 천명이 다하여감에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던 사명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몸과 마음이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바라옵건대 우리 민족의 앞날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옵소서.

우리 민족을 오직 주님께 맡기고 가겠습니다. 우리 민족이 굳게 서서 국방에서나 경제에서나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승만의 마지막 기도문이다.

 

 

이왕지사 이승만 전 대통령을 기억하는 겸에 유언까지 옮겨본다.

-잃었던 나라의 독립을 다시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었는지 우리 국민은 알아야 하며 불행했던 과거사를 거울삼아 다시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내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유언이다.-

지금 이 나라의 위정자들 중에 빈말이라도 누가 이런 말을 하리!!

 

 

언젠가 여기서 젊은 부부가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며 계단을 올랐다.

새아씨 왈, 서방님에게 이승만이 누구냐고 물으니

젊은 서방님 왈, 장기독재를 하다가 쫓겨 난 나쁜 인간이다.

기가 막히는 대한민국 청년의 상식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보잘것없이 초라한 대통령 기념관이지만

알찬 내용의 이승만 전 대통령 일대기가 내부를 꽉 채운다.

중년들은 물론이고 드문드문 보이는 청년들도 열심히 정독을 한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당연히 존경심이 우러나오기라 믿었다.

 

 

國富兵强(국부병강) 永世自由(영세자유)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사력을 강화해서 영구히 자유를 누리자.

1957년에 쓴 이글을 보며 남녀노소 우리들은 무엇을 느껴야 할까!

 

 

젊은 시절의 이승만 모습 뒤편 좌우로

<구미위원부의 설립과 독립외교 활동>

<국내외의 동포들에게>란 제목의 글이 있다.

1919년 워싱턴 D.C에 외교독립노선을 실현할 기구 <구미위원부>를 설치하였다는 내용과

19422월 미 법무장관 <비들>을 설득하여 일본 전쟁 후 한국교포들의 피해를 막았으며

체신부장관을 설득하여 194411월에 태극기 마크가 그려진 우표를 발행하였다 한다.

요즘과 비교하면 그때 그 시절은 보잘것없이 조그마하고 가난한 후진국이었지만

이승만 전 대통령의 외교활동 능력은 너무나도 대단하였다.

 

 

<건국 대통령의 기도와 유언>이란 제목의 사진도 걸려 있다.

내용은 저 위쪽에 기도문과 유언을 미리 옮겨 적어놓았다.

그 옛날의 대한민국 모습이다.

요즘 청년들은 우리나라의 그때 실정이나 국정 능력을 상상이나 하려나?

못된 인간들의 거짓에 세뇌되어 선조들에게는 무작정 험담만 할 뿐이다..ㅉㅉ

 

 

전시(戰時)에 병사들이 탄피로 만들어 선물하였다는 재떨이와

행운의 열쇠 그리고 일상에 사용하던 놋그릇과 은수저가 진열되어 있다.

어릴 적 우리 할아버지가 사용하시던 보온물주머니를 여기서 보니 새삼스럽다.

진열장 벽에 태극의 문양과 우남 리승만박사란 글이 새겨진 방패연에는

노유상(盧裕相)이란 작가의 이름이 조그마하게 적혀있다.

 

 

아름다운 프란체스카 영부인의 모습이 보인다.

보면 볼수록 호감이 가는 프란체스카의 젊을 때 모습이다.

33세의 아름다운 여사의 눈에 가난한 동양인의 독립운동가 이승만이

얼마나 훌륭하고 멋있었으면 어머니의 도움으로 사랑을 하게 되었을까?

요즘의 누구를 보노라면 똑같은 것들은 끼리끼리 만난다는 명언에

하나를 보면 또 하나의 인간 됨됨이를 짐작하게 된다.

 

 

오스트리아의 유복한 사업가 딸이었으며 후에 영부인이 된 프란체스카.

그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 옮기려니 내용이 너무 많아서 그중 일부분만..

날계란 하나로 때로는 사과 한 개로 식사를 대신하며

평생 조국독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가난한 독립운동가 이승만을 만나

사랑을 하고 아내가 되어 구멍 난 양말까지 꿰매가며

헌신적으로 절약하고 평생을 내조하며 살다 간 영부인을 보노라면

그녀는 진정한 한국인으로 존경을 받아야 한다.

 

 

기념관의 뒷마당 노천에 진열된 글씨.

비바람에 아직도 삭지 않고 있는 것을 보니 돌이라 확실히 야물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을 훑어본다.

醫治病世(의치병세).

병든 세상을 잘 진찰하여 다스리라.

한글로 번역을 하고 해설까지 잘 해놓았으니

요즘 곳곳에서 이빨까는 모지리들이 한 번쯤 봤으면..

 

 

民惟邦本 本固邦寧(민유방본 본고방영)

국민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

나라를 통치하는 모지리들은 꼭 새겨 봐야 할 내용이지만

지금의 후안무치 철면피들은 썩어도 너무너무 썩어서

이 친필을 보면 코웃음 지을 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