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의 영부인 육영수 생가.
수없이 경부고속도로를 달렸지만
관람시간이 맞지 않아 그냥 지나치다가
이번의 인천, 파주 여행 후 겨우 시간을 맞춰 4시35분에 도착..^^
안내게시판에는 육영수 생가라 적혀있지만
관람 후 느낌을 정확히 말하자면
육영수 생가지生家址(터)라고 해야 될 듯하다.
주차를 하며 보니 담장의 길이도 엄청 길어
겉보기에도 무척 넓은 저택으로 보인다.
특히나 나무로 된 문의 기다란 건물의 정체는 뭘까?
집안에 들어서니 보수공사를 하느라 한창이다.
장비를 실은 트럭과 인부들을 피해 촬영을 하느라 사진이 좀 이상하다.
대문도 큼직하고 마주 보이는 사랑채도 함께 큼직하건만..
바로보이는 연못과 후면에 지어진 연당사랑채가 참 멋지다.
많이도 말고 딱 요 장면만 가져도 얼마나 좋을꼬!
연당사랑채 뒤편에는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박정희 전 대통령과 영부인의 구구절절한 글들이 전시되어있다.
아름다운 옛 모습들과 애절한 글들을 보느라 한참을 지체한다.
툇마루와 부엌 행랑채 등 □자형 위채를 둘러보니
수백 년의 본모습은 아닌듯하지만
많은 자문과 발굴을 통하여 흔적을 복원하였다하니 잘한 듯하다.
터가 엄청 넓다. 저 위에는 작은 문은 뭔고?
어릴 적 육영수 여사가 알밤을 줍던 추억의 장소란다.
멀리 정자에 육영수 여사처럼 아름다운 묘령의 할멈이 앉아있다.
이런 좋은 곳에서 훌륭한 부모님의 가정에서 성장한 여사는
올바른 인성이 형성되고 풍부한 정서가 함양되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었는가보다.
1600년대부터 3정승이 거주하던 집을
1920년에 육영수의 아버지인 육종관께서
민정승의 자손 민대감에게서 사들였다고 하는 좋은 터다.
운치의 대숲산책길도 좋다.
높은 언덕에서 3정승이 거주하던 곳을 내려다본다.
2002년 4월 26일 충청북도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어 옳게 복원을 하니
넓고 좋은 터와 건물들은 민속촌의 한 부분처럼 보인다.
육영수 여사의 방.
출가하기 전까지 사용하였던 방도 보여준다.
늦은 시간이라 방문이 꼭 닫혀져있다.
넓은 생가에는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사당도 있었고
여름에 음식을 보관하던 냉장시설의 석빙고도 있었다.
곡물의 껍질을 벗기는 연자방아와
곡식을 담아두기 위한 큼직한 뒤주가 두 칸이나 있고 우물이 세 곳이던가?
조선시대 상류계층의 거주공간으로 문화적보존가치가 훌륭한 전통가옥이다.
전면의 툇마루와 후면의 쪽마루가 있는 ㄱ자 아래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와 함께한 많은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다.
이승에 없는 훌륭한 분들이지만 새삼 사진으로 보니 감회가 새롭다.
생가를 한 바퀴 휙 돌아보고 연못가로 나오니
마침 이곳에 상주하는 해설사가 보인다.
늦게나마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생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친절하고 고마운 해설사님에게 감사를 표하며 할멈과 함께..
겸손의 인품을 갖춘 고마운 해설사께서
사진까지 찍어주시겠단다.
모처럼 할멈과 둘이서 포즈를 취하는 즐거움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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