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유적지에는 그의 생가도 있고 묘지와 사당도 있다.
태어난 곳과 생을 마감하고 묻힌 곳을 함께하며
기념관과 문화관까지 한 울타리 안에 있다니
그분 살면서 복도 참 많이 잘 지으셨다..^^
기념관에서 정약용의 가계도와 학풍.
그리고 유배의 길과 머문 곳 등등을 보며
정약용의 생각까지 글로써 듣고 읽는다.
벽면에 송별(送別)이란 정약용의 시 한 수가 적혀있다.
한문의 문장은 생략하고 한글만 옮겨본다.
역정에 가을비 소슬하니 님 보내기 서러워 머뭇거리네
멀고도 먼 이 고을 강진 땅 뉘라서 다시금 찾아주려나
반자가 신선이 되어 가는 길 내 어찌 가히 바라겠는가만
이릉은 마침내 한나라로 돌아올 기약조차도 없었으니
아직도 유사의 그 일필휘지 뽑내던 일 눈앞에 삼삼한데
어찌 차마 말할 수 있으리오, 상감님이 돌아가신 날을
대숲에 내려앉았던 달빛은 새벽이 되면서 사위어가고
고향의 동산 회고하니 머리 숙여 눈물이나 흘릴 뿐이다.
전남 강진에서의 유배 생활을 끝맺게 한 이 송별의 시는
친구 김이교의 부채에 써준 작품이다.
18년의 고독, 유배를 즐기다.
이곳에 정약용의 유배길이 자세히 그려져 있다.
유배지 전남 강진에 가면 <다산박물관>과 <졍약용 말씀의 숲>도 있다.
얼마 전 또 방문하였던 그곳을 곧 소개하리다.
기념관에는 현대적 감성이 느껴지는 방도 있었다.
200여 년 전의 고리타분한 역사를 이야기하는 분위기와는 달리
쌈박하게 꾸며진 방은 그 옛날의 실학자 정약용의 사상이 쬐끔 깃든 것 같다..^^
고전과 함께하는 인테리어 감각이
모던클래식 하다고 생각하며 생가의 문화관을 통하여 바깥으로 나왔다.
생가 앞 여기 이 길이 경기 옛길인가?
달빛 따라 즐기는 여유당(정약용의 호) 야행 안내도가 보인다.
길가에는 정약용의 목민심서 서문의 해설문이 세워져 있다.
군자의 학문은 스스로의 몸을 수양하는 것이 절반이며
그 나머지 절반은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라 적혀있다.
내용을 짐작하건대 200년 전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모든 권력자는
지거들의 배때지를 채우기 위하여 거짓과 폭정의 행위를 일삼으니
위정자들에게 큰 교훈이 되라고 목민심서를 집필하지 않았나 싶다.
그 옛날에도 미리 앞서
지금의 사이비 교육자들에게 전하는 교육사상의 글이 적혀있고
멍청한 지식인들에게 보내는 문학사상의 글도 있다.
정치사상의 글과 과학사상의 글을 읽으며
지금의 현실과 대비를 해보니 한숨만 난다.
길가에 전시된 몇 안 되는 사회적 사상의 글을 보노라니
어쩌면 지금의 위정자에게 보내는 교훈의 글이라 느껴지는지 기가 막힌다.
길가에는 도르래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거중기도 전시되어 있었다.
1800년대에 수원화성 축조를 위하며 만든 정약용의 발명품이다.
-정약용유적지③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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